감정은 힘이 세다!

객원상담원 염지선

‘부모님은 항상 날 위해 희생하셨어요. 빠듯한 형편에도 저를 위해 쓰는 돈은 아끼지 않으셨죠. 그 분들에게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제가 지금 이런 마음이면 안되는데요. 저는 왜 자꾸 그 분들에게서 도망가고 싶어지는 걸까요? 저는 나쁜 아들 같아요.’

‘뭐든 나보다 앞서가는 친구를 보면 자꾸 초라해져요. 어떨 땐 그 친구만 없다면 내가 이렇게 힘들지 않을 텐데 싶어서 그 친구가 죽는 상상을 해요. 그러고 나면 그런 생각밖에 못하는 내 자신이 한심해서 더 괴로워요.’

상담을 하다보면 마음과 생각이 뒤죽박죽이라 괴롭다는 호소를 듣게 된다. 주로 힘든 상황에서다.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이나 상황에 대해 부정적인 감정이 생기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미움과 원망, 억울함, 분노, 질투, 열등감 등의 감정은 마음속에 자리 잡는 것만으로도 우리를 지치게 한다. 이럴 때면 갈등이 시작된다. 솔직하게 감정을 드러낼까? 아니면 그냥 참고 넘길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러한 갈등 앞에서 괜찮은 척, 잘 지내는 것처럼 대처하는 편을 택한다. 마음속 감정보다는 이성적인 잣대로 상황을 통제하는 것, 그것이 성숙한 모습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면서 말이다.

왜 그럴까? 마음을 있는 그대로 표현해서 갈등을 일으키는 것이 두렵기 때문에, 그런 유치한 감정을 품고 있는 내 자신이 더 문제 같아서. 사람들이 내 솔직한 모습에 실망하고 비난할까봐... 등 저마다 이유는 있다. 성장의 과정에서 흔히 우리는 부모나 주변, 사회로부터 ‘나쁜 감정은 느껴서는 안된다’는, ‘착한 생각만 해야 한다’는 당위를 부여받는다. 그래서 때로는 미움이나 분노와 같은 마음을 먹는 것만으로도 죄책감을 느끼는 듯하다. 그러나 느껴서는 안 될 ‘나쁜 감정’이 따로 있는가? 다만 ‘나쁜 행동’이 있을 뿐 아닌가?

감정을 억압하고 이성으로 통제하는 노력은 필연적으로 마음에 어려움을 만든다. 감정은 이성보다 힘이 세다. 수용 받지 못한 채 억압된 감정은 그대로 사라지지 않고 우리 무의식속으로 숨어들어가 우리를 불편하게 한다. 때로는 설명할 수 없는 우울이나 불안, 짜증, 무기력감으로 모습을 바꾸어 우리 일상을 흔들기도 한다.

어떻게 해야 할까? 마음이 가는대로 다 표현하고 행동하며 살 수는 없는데 말이다. 가장 먼저는 내면의 감정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 한다. ‘이런 상황이라면 누구든 이런 마음 들 수 있어’ ‘화가 나는게 당연해!’ ‘많이 힘들지?’ ‘그 사람이 참 밉겠다’ 등. 일부러 순화하거나 고상하게 바꾸려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감정을 인정하는 것이 시작이다. 스스로에게 그렇게 이야기해주어야 하고, 곁에서 힘들어하는 누군가에게 그렇게 말해주어야 한다. 감정은 그대로 인정받을 때 비로소 소화된다. 채 소화되지 않고 억압된 감정이 내 마음에 독소가 되어 위험요인이 될 때 오히려 더 큰 문제를 일으킨다. 충분히 소화된 감정은 사그러들게 마련이고, 보다 건강한 방향으로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 힘이 작동하는 자리를 내어줄 것이다.

혼자만의 노력으로 감정을 소화시키는 것이 잘 되지 않을 때, 주위를 둘러봐도 내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여주고 이해해줄 이가 아무도 없을 때, 그래서 ‘상담치료’가 필요한 것이라고 믿는다. 내 마음이 어떤지, 무슨 말을 듣고 싶은 건지, 어느 방향으로 생각을 정리해야할지 혼란스러울 때 따뜻한 마음과 객관적인 시선을 가진 상담자와의 만남이 큰 힘이 될 것임은 분명하다.